성상-형상 통일의 의미에 관한 재조명: 통일사상의 통일론과 헤겔의 행동철학

청심신학대학원대학교 황진수

I. 들어가며

II. 성상과 형상의 통일을 이해하는 두 가지 방식: 본체론적 통일과 지향적 통일

III. 헤겔의 행동철학: 테일러, 맥도웰, 피핀

IV. 통일사상의 통일론: 성상-형상 관계로 본 포괄적 세계관

I. 들어가며

통일사상은 하나님, 즉 원상의 속성을 온전히 파악하는 지점에서부터 전체적인 사상적 체계를 구축한다. 원상의 구조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항은 성상과 형상의 이성성상의 구조이며, 원상의 내용에서 가장 근원적인 기원은 바로 하나님의 심정이다. 이러한 구조로서의 이성성상 논리와 기능적 속성으로서의 심정 논리는 내재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개념으로서 어느 한 쪽을 빼 놓고서 다른 한 쪽을 이야기 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로 엮어져 있다. 따라서 통일사상의 맥을 정확히 짚어내기 위해서는 심정을 기반으로 한 하나님의 성상과 형상의 관계를 명확히 규명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성상과 형상을 설명할 때 통일사상 및 원리강론 공히 인간의 마음과 몸을 대표적인 예로 들어 설명한다. 그런데 원리강론이 설명하는 성상과 형상의 관계, 즉 인간에게 있어서 마음과 같은 무형의 내적인 성상몸과 같은 그의 형상적인 부분동(動)하고 정(靜)한다고 하는 내용이 사실 역사적으로 매우 설명하기 까다로운 철학적 난제로 내려오고 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마음과 몸을 각각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만약 마음이 존재한다면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가? 마음과 몸은 독립된 실체인가? 마음과 몸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가? 데카르트가 지적했듯이 이러한 질문들은 일상적인 차원에서는 별로 문제가 될 것이 없는 너무나 당연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철학적인 차원에서 볼 때 답을 내리기 매우 어려운 질문들로 남아져 있다. 마음과 몸에 대한 질문은 더 나아가 마음과 몸의 영역을 하나의 생명으로 영위하고 있는 에 대한 질문, 즉 라고 하는 존재는 누구(무엇)인가?라는 반성적(분석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라고 하는 존재는 마음과 몸이 결합된 존재인가? 마음과 몸이란 라고 하는 하나의 존재의 두 가지 다른 표현 방식일 뿐인가? 아니면 는 마음-실체, 몸-실체의 관계를 이끄는 제 3의 실체인가?

이렇듯 정신적 영역과 육체적 영역이 어떻게 상관관계를 맺고 있는 지에 대한, 소위 마음과 몸의 문제(mind-body problem)로 일컬어지는 철학적 질문이 역사상 여러 가지 철학 학파들 간의 논쟁으로 이어져오며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마음과 몸의 이원론(dualism), 관념론(idealism)이나 유물론(materialism)과 같은 환원주의적 일원론(monism), 아예 실체 개념을 희석시키면서 마음과 몸의 구분을 부정하는 행동주의(behaviorism), 혹은 이원론과 일원론의 단점을 보완하려고 하는 발생론(emergentism) 등 여러 가지 관점이 혼재하는 가운데 여전히 그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모두 마음-몸 문제의 헤아릴 수 없는 깊이를 확인시켜 주었을 뿐 만족스러운 설명을 제시해주지는 못하고 있다.

문제는 통일사상 자체도 성상과 형상이 마치 인간의 마음과 몸과 같다고만 설명할 뿐 성상과 형상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그리고 성상과 형상의 수수작용이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직접적인 고찰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통일사상은 성상에 대해 하나님의 성상(본성상)을 인간에 비유하면 인간의 마음에 해당하며(따라서 성상은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다), 이것은 모든 피조물의 무형적, 기능적측면의 궁극적 원인이 된다.라고 간략하게 설명한다.는 원리강론도 마찬가지다. 성상과 형상을 모든 존재가 갖추고 있는 내성과 그 내성을 닮은 외형으로 규정할 뿐 직접적인 구체적 설명이 결여되어 있다. 통일사상이나 원리강론의 전체적 내용을 봤을 때 역사적인 마음-몸 문제를 풀 수 있는 관점이 존재하지만, 문제는 마음과 몸, 즉 성상과 형상에 대해 설명하는 방식이 간략하다 보니 통일교인에게 (혹은 비통일교인에게도) 그 둘의 관계가 이분법적으로 이해될 소지가 많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통일사상은 원상 구조의 통일성을 주장하는 한편, 실체의 개념에 관해 설명하면서 성상과 형상을 자동차(인간)와 부품(성상·형상)으로 비유하면서 자동차가 실체라면 부품 또한 실체이기 때문에 성상과 형상 각각이 실체임을 주장한다. 부품이란 전체를 구성하는 독립적인 부분들이기 때문에 이는 전형적인 마음과 몸의 이원론으로 이해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따라서 통일사상의 핵심논리인 성상과 형상의 통일론을 일관적으로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보다 적절한 이해방식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논문의 목적은 바로 성상과 형상의 통일이 의미하는 바에 대한 적절한 이해방식을 제시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통일론의 이해 방식을 따르면 한 인간 존재의 근본구조인 사위기대의 각 위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언제나 합성체로 존재하게 된다. 여기서 합성은 두 가지 이상이 합치어 하나를 이룬다.는 뜻의 합성(合成)이 아니라 성(性)이 서로 맞는다는 뜻의 합성(合性)을 가리킨다. 모든 존재는 성상과 형상이라는 서로의 성질이 화합한 존재라는 뜻이다. 이는 성상과 형상이 따로 존재하다가 하나로 뭉친다는 개념이 아니라 원래 모든 존재는 서로 닮은 두 속성인 성상과 형상이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로 이루어져 삶의 모든 존재 양상을 이루어감을 의미한다. 만약 심적 사건을 순수한 성상의 작용으로 보고 육적 사건을 순수한 형상의 작용으로 구분하여 이해한다면 그것은 이원론이다. 통일사상의 전반적인 문맥을 따른다면, 심적 사건이든 육적 사건이든 삶의 모든 순간은 성상과 형상의 통일적 순간으로 봐야 한다.

성상과 형상이 본체론적으로 이미 통일되어 있지만, 인간은 전 생애를 통해 마음과 몸의 통일을 추구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인간이 인생에서 어떠한 가치를 성취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내적·외적 행동을 사위기대의 틀에서 마음과 몸의 관계로 나누고 다시금 합성하는 반성을 끊임없이 되풀이함으로써 삶의 방향성을 하나님의 심정에 맞추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이처럼 성상-형상 통일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본체론적 통일성(ontological unity)과 심정 성숙을 위한 지향적 통일성(orientational unification)을 함께 다루어야 한다. 본 논문은 성상-형상의 본체론적 통일성과 지향적 통일성의 각각의 의미 및 서로의 관계를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와 같은 시도는 통일사상의 통일론(the theory of oneness)이 내포하는 바를 확장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성상과 형상의 두 가지 통일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본 논문은 헤겔의 행동철학의 핵심을 소개하고 통일사상과의 연관성을 이끌어내고자 한다. 이분법을 극복하려 했던 헤겔 철학을 기반으로 찰스 테일러와 존 맥도웰, 로버트 피핀 등이 주장한 헤겔적 행동철학은 마음과 몸의 영역을 전인적 인간이 펼치는 행동의 순간으로 해석하고 그 순간의 의미의 파악을 또한 행동으로 성취해야 함을 주장한다. 행동의 순간과 성취의 개념을 통일사상의 본체론적 통일성과 지향적 통일성과 비교함으로써 마음과 몸의 관계에 대한 통일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한다. 따라서 본 논문은 2장에서 통일사상의 성상-형상 관계를 새롭게 재조명 해보고, 3장에서 헤겔의 전인적 행동철학을 통일사상의 성상-형상 개념과 연계시켜 살펴본 뒤, 4장에서는 통일사상과 헤겔의 행동철학을 비교, 종합하는 가운데 통일론에 입각한 통합적 세계관을 새롭게 규명하고자 한다.

II. 성상과 형상의 통일을 이해하는 두 가지 방식: 본체론적 통일과 지향적 통일

성상과 형상의 본체론적 통일

서두에 언급했듯이, 통일사상의 성상-형상 관계는 두 가지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성상과 형상은 어느 한 쪽도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오직 둘의 지속적 관계 속에서만 각각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상호의존적 통일성에 초점을 맞추는 관점이다. 본 논문에서는 이를 성상과 형상의 본체론적 통일성(ontological unity)이라 부르기로 한다. 이러한 관점은 원상을 닮은 모든 존재의 구조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이 세계 속의 모든 존재를 가장 미시적인 영역으로 분석하여 나누려야 나눌 수 없는 경지로 들어가더라도 현대과학이 잡아낼 수 있는 그 근본 입자의 운동은 내재적 법칙성을 지닌 에너지체로서 내성과 외형이라는 성상과 형상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반대로 가장 거시적인 관점으로 전 우주를 하나의 존재로 보더라도 통합적 생명체로서의 성상-형상 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존재하는 그 어떤 개성진리체도 예외없이 성상-형상의 관계성이 이미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성상과 형상의 본체론적 통일성의 관점에서는 인간도 예외일 순 없다. 통일사상은 인간에 있어서 성상과 형상의 관계를 마음과 몸의 관계로 본다. 마음이란 일반적으로 인식, 사유, 반성, 추측, 상상 등의 심적 사건이 벌어지는 영역이다. 종류나 성격에 관계없이 이러한 심적 사건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그에 대응하는 육적 사건이 반드시 동반되는 법이다. 마음의 그 어떤 작용도 외부 자극을 받아들이는 감각 기관의 작용, 정교한 뇌의 작동 및 호르몬의 상호작용이 없이는 벌어질 수 없다. 즉, 몸의 작용을 떠난 독립적인 심적 사건은 발생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활동이나 작용도 이중적이어서, 거기에는 반드시 심리작용과 생리작용이 통일적으로 병행하게 된다.

만약 독립적인 심적 사건이 가능하다고 한다면, 혹은 독립적인 육적 사건이 가능하다고 한다면, 마음 작용의 근원과 몸의 작용의 근원이 분리되어 존재할 수 있다는 유추가 가능해진다. 이는 통일사상의 근본적 출발점인 성상과 형상의 통일론에서 벗어나 유심론이나 유물론으로 연결될 수 있는 논리의 길이 열리게 됨을 의미한다. 하지만 심적 사건이든 육적 사건이든 간에 인간의 삶의 모든 순간들은 마음과 몸의 불가분적 상호의존의 관계를 통해 창출되기 때문에 유심론과 유물론이 아닌 통일론으로 이 세계를 해석해야 한다고 통일사상은 강조한다. 성상과 형상의 본체론적 통일성은 한 순간의 예외도 인정하지 않는 인간의 전체적 삶을 지배하는 근원적 존재 구조인 것이다.

이러한 마음과 몸의 근원적 통일성은 우리에게 마음과 몸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영원한 가능성과 영원한 불가능성을 동시에 제공한다. 후자의 경우를 먼저 살펴보자면, 라는 존재는 마음과 몸의 불가분적 관계로 삶의 모든 순간을 영위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나의 심적 작용이 마음과 몸의 관계를 객관화하려고 하는 순간 그 조망하려는 마음을 가능하게 하는 성상-형상 관계는 언제나객관화의 대상에서 벗어나게 된다. 다시 말해서, 마음과 몸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면 마음이 몸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마음과 몸의 관계를실현 가능 여부를 떠나서객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마음과 몸이 불가분의 관계라면 마음과 몸의 관계를 살펴보려는 그 마음이 이미 몸의 작용과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에 마음과 몸의 관계를 분석의 대상으로서 실험대에 세우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과 몸의 본체론적 통일성에 의해 마음과 몸의 관계를 파악(grasp)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마음과 몸이 서로 공통 기반이 없는 독립적 존재라면 마음에게 있어서 몸은 영원한 타자로 남아 서로를 미지의 영역에 둘 수밖에 없다. 마음과 몸을 완전히 구분된 존재로 보는 이러한 이분법적 이해 방식 속에는 한 쪽을 다른 한 쪽의 관점으로 포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철저히 배제되어 있기 때문에 결국 존재론적으로나 인식론적으로 마음과 몸의 관계는 평행선을 긋게 된다. 그러나 통일사상의 성상-형상 통일론에 따르면 마음과 몸이란 마치 물이 전혀 다르게 보이는 얼음과 수증기로 나뉠 수 있지만 HO라는 물 분자인 것은 동일한 것처럼, 마음과 몸을 하나의 본체가 두 방향의 양태로 나타난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마음이 몸의 본질을 공통 기반으로 내재하고 있어서 몸을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이처럼 철학적 난제로 남아있는 마음과 몸의 문제는 사실 성상-형상의 본체론적 통일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과 몸의 관계에 대해 알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지만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는존재 구조의 오묘함 앞에서 불가지론이나 맹목적 운명론과 같은 부정적 태도를 취할 필요는 없다.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성상-형상의 본체론적 통일성은 마음과 몸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성찰하게 하여 심정을 성숙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성상-형상의 본체론적 통일성의 핵심은 마음과 몸이 하나의 본체를 공유하면서 불가분의 통일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과연 그 본체가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존재 구조적인 관점에서 피상적인 답변을 먼저 하자면, 그 본체 또한 마음과 몸 중의 어느 한 쪽이 될 수 없음은 당연하다. 통일론의 관점에서 모든 존재는 성상과 형상의 관계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성상과 형상의 본체 또한 그 자체적으로 이미 성상과 형상의 관계성이 내재되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는 환원주의적 일원론이 아니다.) 성상과 형상의 통일로 존재하는 본체가 각각 성상과 형상으로서의 마음과 몸으로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논리는 통일사상의 통일론에 일관성을 부여해주는 틀이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은 A=A식의 자기 지시적(self-referential) 동일성일 뿐이라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기에 보다 더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통일사상의 전반적인 문맥을 통틀어 봤을 때, 무생물을 포함한 모든 존재의 성상-형상 관계의 기저엔 생명이 있다. 통일사상에 따르면 하나님의 심정을 동기로 하여 창조된 이 세계는 사랑의 생명이 충만한 세계다. 통일사상은 이러한 생명의 충만함을 우주의식(cosmic-consciousness)이라고 표현하는데 이 우주의식이 인간 존재로 침투하여 인간의 의식(proto-consciousness)를 형성한다.의식이라는 표현은 전 우주가 인격적 존재인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되었음을 나타내면서 생명의 성상적인 면을 부각시킨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생명으로서의 우주의식 혹은 원의식은 독특한 염기배열구조로서 생명의 발달 과정을 지배하는 DNA라는 형상적 언어를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구체적인 생명의 역동성(vitality)은 로고스(Logos)에 따라 물질적 법칙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를 창조목적으로 이끄는 가치적 원리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이 통일사상이 설명하는 생명은 각 개체의 성상-형상 관계를 이끄는 본체일 뿐만 아니라, 모든 개체들의 관계성을 통틀어 전 우주적인 성상-형상 관계를 이끄는 본체라고도 볼 수 있다. 즉, 본체로서의 생명의 성상-형상 관계가 인간의 마음과 몸과 같은 두 양태의 관계성으로 발달되어 실체가 현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상-형상의 본체론적 통일성은 생명이 있는 한혹은 생명권 안에 포함되어 있는 한작용하는 근본 존재원리다. 인간으로 보자면 살아 숨 쉬고 있는 한, 즉 천주적 차원의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한 성상과 형상은 불가분의 일체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성상과 형상의 지향적 통일성

지금까지는 성상과 형상의 관계에 대해 본체론적 불가분성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제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앞서 언급한 대로 지향적 통일성의 관점에서 인간의 마음과 몸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겠다. 인간의 마음과 몸의 관계에 대해 본체론적 통일성만을 강조하다보면 사실 인간의 경험적 내용들과는 상충되는 부분이 많다. 삶의 다양한 순간에서 인간은 마음과 몸의 갈등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전체 역사를 통틀어, 동서양을 막론하고 마음의 욕망과 몸의 욕망 사이의 갈등이 삶의 보편적인 현상으로 이어져오고 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육체적 욕망을 부정한 것으로 치부해 왔으며, 반대로 니체는 이성 중심의 권위적 문화로부터 몸을 해방시키려 했다. 만일 마음과 몸이 본체론적으로 불가분의 통일적 관계를 유지하는 하나의 본체(생명)이라면 왜 이러한 갈등, 불균형 등이 나타나는 것일까? 이미 마음과 몸은 본체론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인데 마음과 몸이 통일을 지향해야 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에 대한 기독교 신학의 표현처럼, 마음과 몸, 성상과 형상의 통일은 이미(already)아직(not yet)을 동시에 품고 있는 듯하다.

통일사상에 따르면 하나님은 사랑의 실체적 관계를 맺고 싶은 심정이 동기가 되어 이 세계를 창조하셨으며, 사랑의 생명이 충만한 이 세계 속에서 인간을 하나님의 자식의 입장에서 하나님 대신 만물을 주관하는 입장에 세우시려 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이 새겨진 생명으로부터 인간이 자동적으로하나님의 사랑의 실체대상이 되는 것은 사랑의 본질을 두고 볼 때 충만한 사랑이 되기엔 부족한 것이다. 사랑은 홀로 이룰 수 없는, 오직 상대적 관계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자율적으로상대의 지평에 자신의 지평을 맞추어 모든 것을 투입할 때 사랑은 성숙한 기쁨을 선사하는 법이다. 따라서 자식으로서 창조된 인간이 하나님과의 실체적 사랑 관계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자발적인 노력을 통해 하나님을 닮은 삶의 지평을 스스로 세워 하나님의 심정 세계와 완전히 통해야만 한다. 이러한 과정을 원리강론은 간접주관권이라고 칭한다. 인간은 간접주관권 내에서 하나님과 같이 창조원리를 중심삼고 사랑의 대상에 절대신앙, 절대사랑, 절대복종의 자세를 갖춤으로써 하나님의 지평을 스스로의 지평으로 체화(體化)시켜 성장하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

따라서 인간에게 있어서는 마음과 몸의 본체론적 통일성만으론 사랑의 완성을 거둘 수 없다. 부부의 관계, 부모와 자식의 관계, 형제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만물과의 관계, 더 나아가 영인들과의 관계 등을 통해 이미 본체론적으로 하나 되어 있는 마음과 몸의 관계를 실체들 간의 관계 속에서 실현시켜야 한다. 이를 반대로 표현하면, 그러한 성상-형상 관계의 실체적 실현을 통해 각자에게 내재되어 있는 성상-형상의 본체론적 통일성을 깊게 깨달아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자신의 통일적 원상을 실체적으로 분립하시어 창조된 실체 분립 대상들이 다시금 실체적으로 통일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기쁨을 얻으시려 했던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닮아 창조되었기에 같은 과정을 걷게 된다. 즉, 하나님을 중심한 성상과 형상이 본체론적으로 통일되어 있는 인간이 위에서 열거한 여러 실체적 관계를 통해 자신의 통일성을 체휼하면서 서로 기쁨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창조목적에 따른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자신의 성상-형상 통일성을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실체적으로 체휼하는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면 자신 스스로가 이미 하나님의 성전(聖殿)임을, 즉 하나님을 중심한 성상-형상의 통일체임을 더욱 실체적이고, 더욱 성숙한 차원에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인간은 타자와의 실체적인 참사랑 관계를 통해 하나님을 중심한 성상-형상의 본체론적 통일성을 더욱 깊게 깨달아가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는 이미 스스로에게 내재된 성상-형상의 본체론적 통일성을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실체적으로 실현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타자와 맺게 되는 성상-형상의 외재적 관계는 무의식적 통일 상태에 있던 나 자신의 내재적 성상-형상 관계를 마음과 몸이라는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 나뉘어 인식하게끔 만드는 계기를 마련한다. 타자와의 수수작용 속에서 관계의 전개 상황에 따라 자신의 행동, 언어, 역할 등을 반성하게 되고, 이러한 반성은 자신의 모든 행동을 내적(심적) 의도와 외적(육적) 결과로 통찰하여 향후 자신의 행동 방향을 가다듬게 만든다. 또한 성상-형상의 본체론적 통일성을 기반으로 타자와 하나 되려고 하는 행동의 방향성은 타자와의 원만한 수수작용을 위한 원동력이 된다.

이와 같이 내재적 성상-형상 관계와 외재적 성상-형상 관계는 양방향의 상호보완적 관계를 이루어 성상-형상의 통일을 개인과 타자 간에 존재적으로, 그리고 개인 자체 내에 인식적으로 완성하게끔 만드는 삶의 지향성을 만들게 되는데, 본 논문에서는 이를 성상-형상의 지향적 통일성(orientational unification)이라고 부른다. 지향적 통일성은 본체론적 통일성을 기반으로 개인과 타자 간의 실체적 관계에 통일의 지향성을 불어넣어주고, 각 개인이 본체론적 통일성의 의미, 가치를 되새김으로써 하나님을 닮아 창조된 통일체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깊게 깨닫게 해준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대로 본체론적 통일성과는 달리 지향적 통일성은 자동적으로 갖춰지는 것이 아니라 부단히 자기 수양에 힘쓰고, 타자와의 관계에 있어서 참사랑으로 통일되고자 하는 노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는 다시 말해서 본체론적 통일성으로부터 비롯된 지향적 통일성을 다시금 본체론적 통일성으로 실체적, 인식적 회귀를 성취해야 하는 것이라 말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기쁨과 인간의 기쁨은 같은 지평에서 종적인 중심과 횡적인 관계성의 원만한 수수작용을 통해 하나 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III. 헤겔의 행동철학: 테일러, 맥도웰, 피핀

이 장에서는 성상과 형상의 본체론적/지향적 통일성의 상관관계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철학적 내용으로서 헤겔의 행동 철학을 제시하고자 한다.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의 논문 헤겔과 행동철학’(Hegel and the Philosophy of Action (1983))은 20세기 영미권을 중심으로 발전해온 인간 행동의 본질에 관한 분석철학적 접근 방식에 대응하여 헤겔의 철학을 행동철학적 관점으로 재해석하는 연구를 촉진시키는 시발점 역할을 해왔다. 이 논문에서 테일러의 주된 의도는 행동 철학의 기본 사상으로 굳어진 도널드 데이비슨(Donald Davidson)의 이분법적 관점, 즉, 행동을 심적사건과 물적사건의 인과관계로 놓고 전자에서 후자를 이끌어내는 정신적 혹은 뇌의 작용 같은 생리적 원인을 독립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보고, 또한 이렇게 파악된 원인을 다른 여느 사건들로부터 인간 행동이라는 고유한 사건을 구별할 수 있게 하고 인간 행동의 이성적 설명을 가능케 하는 근본적 요인으로 보는 접근방식을 반박하기 위함이었다.

이를 위해 테일러는 여러 가지 행동의 요소들을 불가분의 관계로 엮어진 행동의 들로 이해하는 헤겔 철학을 바탕으로 한 질적행동이론(Qualitative Theory of Action)제시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독립적으로 보이는 욕망, 믿음, 의도, 목적과 같은 심리적 요인들이 행동으로부터 분리돼서 존재한다고 볼 수 없는데, 왜냐 하면 그러한 심리적 요인들은 언제나 행동을 유발하면서 만이 존재할 수 있고 또한 그것들의 설명은 오직 현상적으로 나타나는 행동을 통해서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은 성상과 형상의 본체론적 통일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만약 행동의 이면에 있다고 여겨지는 특정한 목적이나 의지가 행동 그 자체와 불가분의 관계라고 한다면 과연 그러한 심적 속성들을 어떻게 개념화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것이 문제가 된다. 개념화한다고 하는 것도 결국 행동의 한 양식이기에 행동을 개념화한다는 말 자체가 동어 반복적 모순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 테일러는 동어 반복적 문제점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헤겔의 철학이 그러하듯 동어 반복적 행동 자체를 변증적으로 포괄하고 재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행동에 관한 구체적인 지식의 정도 그 자체가 바로 우리가 행동을 통해 성취해야 하는 대상이 된다. 다시 말하면 행동의 개념화 그 자체가 행동이며, 행동 스스로가 더욱 더 구체적이고 투명한 매개를 자신의 행동 속에 구현하려고 하는 행동을 취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행동 주체가 행동의 의미를 스스로의 개념화 행동을 통해 파악한다는 이른바 자의식의 성취 개념은 성상과 형상의 지향적 통일성 개념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성취의 개념은 헤겔의 자의식의 본질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모티프 중의 하나이다. 로버트 피핀(Robert Pippin)에 따르면, 헤겔에게 있어서 자기 관계로서의 자의식이란 그저 심안’(心眼)을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게 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비록 그렇게 하는 것이 즉각적으로 분명하고 틀림없는 내면의 내용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이 보이지만종의 심적 자세(mindedness)를 성취하는 것이다. 이러한 심적 자세라는 것은 타인으로서 인지되는 또 다른 자의식과의 상호적 인지를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이며, 따라서 이 과정은 반드시 사회적 영역에서 다른 사람들과 다양한 매개체를 통한 심적 자세의 실체화, 즉 행동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심적 자세는 공동체적 자의식들 간의 실체적 관계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며 그 관계 속에서 내적인 마음과 외적인 실재, 또는 개인과 전체의 이분법적인 존재론적 구분은 사실상 무의미해 진다. 자의식이란 그 자체로서 행동이고, 이 행동이란 다름 아닌 공동체적 자아들의 상호 관계적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심적사건과 물적사건의 인과관계라는 좁은 시각에서 인간의 행동을 실험실에서 해부하듯이 분석하는 것은 인간의 내면과 외면, 개인과 공동체간에 복잡하게 얽혀있는 인간 행동의 실재를 간과하는 것이다.

테일러에 따르면 데이비슨의 행동의 본질에 대한 접근 방식, 즉 존재적으로 구분된 심적사건과 육적사건이 일관론(coherentism)의 틀 안에서 인과 관계가 성립한다고 믿는 방식의 기원은 적어도 17세기의 데카르트 철학과 경험주의로 거슬러 올라간다. 상반되어 보이는 이 두 철학사조는 한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경험을 가능케 하는 조건의 존재를 상정하고 그 조건의 분명하고도 불변하는 확실성’(certainty)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데카르트 철학은 자기 확실성(self-certainty), 경험주의는 감각 확실성(sense-certainty)의 추구 양상을 띤다. 이 두 가지 방식 모두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확실성의 대상과 그 대상을 확실하다고 판단하는 주체가 동일한 자아의 삶의 과정 속에 구현되기 때문이며, 또한 확실성의 기원이 단지 코기토의 즉각적 경험 또는 감각의 즉각적 경험이라는 즉각적 주어짐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떻게 즉각적으로 주어진 것이 그것에 대한 주관적(für sich) 경험적 판단에게 그것 그 자체(an sich)를 진실로 나타낼 수 있다고 하는 인지적 확실성을 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어떻게 개념 활동의 바깥에서 얻어진 주어진 것믿을만한 개념적 체계를 수반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이다. 순수한 경험적 직관들, 즉 내면으로부터의 코기토, 또는 외부로부터의 감각경험들의 획득과 그것들의 주관적인 개념화를 따로 구분 지어서 이해한다면 두 영역 사이에 존재해야만 하는 규범적 관계의 판단을 어떻게 내릴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답을 할 수 없게 된다. 피핀에 따르면 사실 그 둘 사이를 완전히 구분 짓는 일조차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어떤 주어진 물체를 특정한 방식으로 지각하고 인지하는 활동자체가 그것을 그러한 특정한 방식으로 인식(apperception) 하지 않고서는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존 맥도웰(John McDowell)은 이러한 어려움에 대해 매우 심도 깊은 논의를 제공하는데, 이를 위해 그는 알프레드 셀라(Alfred Sellars)가 제기한 주어짐의 신화(the Myth of the Given)라는 논제를 이용한다. 우리는 어떤 지식을 추구함에 있어 제한된 주관적 개념 틀을 벗어나서 우리의 지식을 진리로 이끄는 어떤 객관적 토대를 찾고자 하는 경향이 있는데, 주어진 것이라는 아이디어는 그 때마다 매우 매력적인 해결책으로 다가온다. 피히테(Fichte)의 관념주의처럼 개념적 ’(space) 속에 모든 것을 환원시키려는 시도는 우리의 경험적 판단들이 객관적 실재와 동떨어져 있다고 하는 비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맥도웰은 이러한 주관적 관념주의에 대해 진공속의 마찰없는 회전”(frictionless spinning in a void) 또는 자급자족적 게임”(self-contained game) 이라는 표현으로 비판한다. 맥도웰에 따르면 이러한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 주관적 개념 틀 너머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규범적 이성의 장(space of reasons)을 상정하고 그로부터 주어지는 개념 바깥의 개념(extra-conceptual given)에서 진리의 근거를 찾으려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한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를 뒷받침하기는 쉽지 않은데, 이성의 장이 어떻게 개념의 장을 포용하는 지에 대한 내용이 우리가 가진 개념의 장바깥에 존재하기에 단지 신비적으로 그렇게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어진 개념이란 개념은 우리의 지식이 완전한 진리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자조적인 변명에 쓰일 수는 있겠으나 불가지한 이성의 장 그 자체가 우리의 개념을 정당화하는 기반으로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주어짐의 신화는 단지 인식론적 문제들에 국한되지 않고 행위자가 그의 행동을 개념화함에 따르는 문제 속에도 깊게 관여하고 있다. 테일러가 말하는 질적행동이론을 바탕으로 보면 우리는 이 문제를 사실 행동의 신화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우리의 신체적 움직임을 다른 여타 자연 현상과 다름없는 자연적 움직임으로 관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의 개념화를 자연 현상과는 관련 없는 독자적인 자연 발생(sui generis spontaneity)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똑같은 문제에 봉착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행동의 개념적 인식이 자연 발생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이해하는 한 우리는 우리의 행동에 대한 개념적 설명 또는 정당화가 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를 찾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행동이 처음부터 특정한 방향성을 갖춘 의도적, 이성적 행동이라고 규명하는 일은 더더욱 어렵게 된다. 맥도웰은 이러한 행동의 이분법적 접근방식에 있어서 행동의 개념화를 이끄는 자연발생적 의식 활동의 역할은 단지 외적인 신체활동의 내면에서 그 활동을 이끈다고 믿어지는 의도나 의지와 같은 속성을 꾸며내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테일러 또한 이 같은 이분법적 사고방식으로는 행위자가 관찰하는 사물에 대한 지식과 행위자로서의 자신에 대한 지식을 구분할 수 없음을 지적한다. 이처럼 진리의 판단을 유보하게 했던 주어짐의 신화의도와 행동의 관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행동의 신화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사실 최근의 분석철학에서 다루어온 행동철학은 인간 행동을 특별한 종류의 사건으로서 관찰하고, 또한 그 사건의 본질을 만족스럽게 묘사하고 설명하고 정당화하는 방법을 분석적으로 발견하는 일에 치중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같이 무언가를 관찰하고 발견하려는 물(物)중심적인 분석적 연구가 간과해온 것은 발견의 현상에서 중요한 것은 단지 찾고자 하는 대상만이 아니라 그 발견 행동 그 자체이미 특정한 사유와 행동의 형태를 구현하고 있는 그 행동 그 자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이분법적 그림에서는 신체적 움직임과 그에 관한 심적 의도를 연결할 수 있는 그 어떠한 정당성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이를 얻기 위해서는 특정한 믿음을 이성적으로 현현하게 하는 어떤 주어진 것’, 즉 그것이 수반하는 개념 바깥의 개념에 기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이러한 기대는 단지 주어진 것이 규범적으로 주관적 개념 틀을 포괄한다고 하는 즉각적 믿음에 근거할 뿐이다. 비록 그 믿음이 행동의 신화가 드러내는 문제점들을 회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줄지라도 그 믿음 자체가 정당화의 근거는 될 수 없다. 김재권이 지적 한대로, 이 문제는 단순히 정신적 세계를 신경과학적 언어(Neuroscience)로 환원시키거나 반대로 물질세계를 심리학적인 언어(Vernacular Psychology)로 환원시키는 방식선택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어느 쪽이든 주어짐의 신화를 명확히 밝혀내지 못하는 한 마음과 몸의 관계에 대한 설명은 항상 불만족스러운 것이며, 그럴 때마다 우리는 양쪽 방식 사이에서 한 쪽을 골라야 하는 끊임없는 선택을 강요받기 때문이다.

주어짐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행동의 규범적 상태에 대해 행위자가 그에 반응하는 자신의 규범적 인식을 성취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 둘의 규범적 관계가 단순히 주어지는 것이라면 내적인 규범을 외적인 규범으로 (혹은 그 반대로) 환원시키는 것 이상의 결론을 낼 수 없으며, 이는 자기규범적인 이성적 행위자로서의 인간의 지위를 정당화 할 수 없게 하는 요인이 된다. 헤겔의 행동철학은 그러한 환원적 관계에 대한 인식을 행위자가 행동을 통해 성취해야 하며 그럼으로써 즉각적인 환원 구조를 초월적 인식의 관계로 승화시켜야 만이 주어짐의 신화를 깨뜨릴 수 있음을 시사한다. 자의식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은 이미 그 성취의 행동 그 자체가 초월적 행동임을 뜻하며, 초월적이기 때문에 가능한 공명적 인식을 그 초월적 행동으로 성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헤겔은 실재(Realität)를 스스로를 실체화하는 인식의 능동적 현실(Wirklichkeit)로 파악한다. 행동하는 자의식들간의 상호 인식과 화해를 통해 배후에는 갖가지 조건이, 측면으로는 갖가지 부수적인 상황이 그리고 전면에는 온갖 귀결이 무한히 넓혀져 있[] 행동의 모든 요소들을 행동을 통해 행동의 순간들로 지양(aufheben)해 가는 것이다. 행동이란 모든 것을 포괄하는 장을 형성하는데, 그 안에서 행위자의 감정, 지식, 판단 등이 행동의 실재를 파악하는 자기관계의 순간들로서 연결되며, 또한 동시에 그 순간들 하나하나가 바로 행동 그 자체이기도 하다. 분석철학에서 말하는 감정, 욕망, 믿음, 의도와 같은 심적 사건들이 실상 인간 삶의 과정을 드러내는 순간들이라고 봤을 때 그 순간들은 삶 속에 내재된 가능성들의 실체화라고 볼 수 있고, 그 실체화의 면면들이 가지는 특정한 성격은 그것을 이성의 영역으로 위치시키는 개념화 행위에 의해 점점 더 명확한 방향성을 드러낸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인간의 행동은 더욱더 현실적이고 목적 지향적 행동으로 변모해 갈 수 있다.

IV. 통일사상의 통일론: 성상-형상 관계로 본 통합적 세계관

헤겔의 행동철학을 위와 같이 다소 길게 소개한 이유는 헤겔의 행동철학이 통일사상이 내포하는 성상-형상의 본체론적 통일성과 지향적 통일성을 심층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방법론적 틀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테일러가 제시한 질적행동이론은 심적사건과 물적사건 모두 인간의 삶의 순간, 즉 행동의 순간으로 보는 통일적(holistic) 시각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는 성상-형상의 본체론적 통일성의 개념과 같은 선상에서 비교, 해석될 수 있다. 피핀이 말하는 타자와의 관계를 통한 자의식의 성취는 다름 아닌 성상-형상의 지향적 통일성을 인식적으로 성취해야만 하는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또한 맥도웰이 주장하는 주어짐의 신화의 극복이란 이분법적인 구도 속에서는 마음과 몸의 인과관계를 즉각적으로 주어진 것에서 밖에는 그 근거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테일러와 피핀의 견해와 같이 전인적 인간(whole person)이 삶의 순간을 초월적으로 파악해 감으로써 행동의 신화를 극복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본체론적 통일성과 지향적 통일성이 극복하고자 하는 이분법적인 사고의 한계를 설명할 수 있는 철학적 근거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이처럼 헤겔의 행동철학을 연구하는 사상가들의 접근 방식, 즉 철학적 방법론의 틀이 성상-형상 관계를 효과적으로 드러나게 하며 또한 그 내용을 뒷받침하고 있다.

하지만 헤겔적 행동철학의 한계는 분명하다. 관념론의 테두리 안에서 자의식을 가진 인간들의 상호관계를 통해 이루어가는 공동체적 삶의 궁극적 목적은 이성적 에 도달하는 것인데, 이는 이성적 앎을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삶의 가장 고차원의 영역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일사상의 성상-형상 논리가 추구하는 궁극적 가치는 앎의 영역을 포괄하는 심정의 성숙이다. 본체론적 통일성이 삶의 알파와 오메가가 되는 존재 구조 속에서 위하는 참사랑의 삶을 실체적으로 지향, 전개시킴으로 말미암아 지향적 통일성이 본체론적 통일성과 맞닿는 경지에 이르러 신-인-만물의 전반적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심정과 인간의 심정이 완벽히 공명하는 심정 세계를 이룩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헤겔의 행동철학이 제시하는 전인적(holistic) 존재 이해방식, 즉 삶의 순간이 다른 삶의 순간을 더 높은 차원에서 파악하고 더 나은 방향의 행동으로 승화시킨다는 철학적 틀은 성상-형상 통일의 의미를 새로운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더 이상 사위기대의 각 위를 분절적으로 쪼개어 이해하지 않고 합성체로서의 통합적 삶의 순간으로 이해하여 오랜 기간 철학사에서 이어온 마음과 몸의 이분법을 통일사상의 통일론을 통해 극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본체론적 통일성과 지향적 통일성의 수수작용을 우리 모두가 몸소 사랑으로 실천하여 이 세계를 대화합, 대통합의 세계로 이끄는 선봉장이 되는 것이야말로 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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